
1. 봉양면
- 본래 신라 조문국에 속하였고, 고려시대에는 의성부 하천면, 조선조에는 의성현이라 불림.
- 1910년 한일합방 당시 본 면의 봉천(鳳川)의 형상이 양지(陽地)바른 곳에 봉이 앉은 모양과 닮았다 하여 봉양면으로 개칭됨.
2. 삼산리
삼산1리(고산)
- 백산 높은 봉우리가 마을 뒤에 솟았고, 앞에는 맑은 내가 흐르고 동·남서쪽에 둘러싼 산들을 배경삼아 약 390년 전 임진왜란 때 골짜기에 집들이 세워졌으니 이는 의성 김씨, 동래 정씨, 김해 김씨 3성이 난을 피해 모여들었던 것임.
- 봉양에서는 보기 드물게 100년이 넘은 교회가 우뚝 섰음. 그로 인하여 일찍부터 개화가 시작되고 생활양식에 변혁이 일어났고, 교육열이 높아 유능한 인재가 많고 서로 도와 길흉사를 치르되 폐습을 물리치니 일치 단결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마을임.
삼산2리(오산)
- 마을입구를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로 선조 26년 참봉 박계경이 현풍이 들어와 정착함.
- 철종 때 이진기라는 선비가 와서 뒷산에 오동나무가 많이 우거진 것으로 보고 그 산 이름을 오동산이라 부르고, 오동산의 정기로 마을이 번창하리라 하여 마을 이름을 오산(梧山)이라 부름.
삼산3리(송산)
- 아늑하게 솟은 산을 배경으로 구비 지는 내(쌍계천)읗 끼고 반듯하게 경지정리된 들(한들)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음.
- 조선조 숙종 때 임세웅이 마을 앞에 소나무가 울창한 것을 보고 승은의 승자를 파자하여 송산으로 고쳐부름.
3. 장경지정리된 대, 분명, 나호
- 1663년 오봉 신지제가 후진을 기르기 위해 세웠던 강당에 경현사가 창건되고 그후 장대서원으로 개칭되었는데, 이 서원명은 당시 의성 현령이 장기어신(藏器於身), 대시이동(待時而動)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그 첫 자를 붙여 부른데서 유래됨.
4. 풍리리
풍리1리(상리)
- 약 470년 전 성산이씨 이중보가 개척하여 후생을 가르치고 아주신씨 신개보가 입향하여 새로이 예절을 밝힌 곳이라 하여 신예곡이라 하였음.
- 한말에 아래윗 동리가 분리됨에 따라 윗마을은 상리라 했으나, 행정구역 개편때 풍리1리라고 개칭함.
풍리2리(중리)
- 조선선조 임진왜란 때 만귀당 박영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함.
- 위로는 상리, 아래로는 장대가 인접한 가운데 자리하여 중리라 함.
풍리3리(풍림)
- 927번 지방도에서 약 4km 떨어진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면내에서 가장 오지마을이며, 의성읍과 인접해 있지만 교통이 불편했지만 2016년 시내버스가 운행되어 살기좋은 전형적인 농촌임.
5. 구산리
구산1리(사구)
- 아주신씨가 이마을을 개척하여 마을 앞 하천의 모래가 깨끗하고 지세와 수목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그 경관을 찬탄하며 사구(沙邱)라고 이름 지음.
구산2리(덕은)
- 약 520년 전에 아주신씨가 이곳에 정착했는데 그의 호가 덕은이어서 마을이름을 덕은동이라 함.
- 이마을에는 봉양면내 제 1의 거목으로 알려진 느티나무가 마을입구에 있음.
